| 문화기획]그림책 속 ‘런닝맨’ 도서관으로 가다 |
| [경향신문]|2010-09-14|76면 |TITL [문화기획]그림책 속 ‘런닝맨’ 도서관으로 가다판 |4064자 |
| 학교도서관저널과 ‘미션 도시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예능 장르를 선보이며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런닝맨’이다. 이 프로그램의 포인트는 바로 문제 해결. 호기심을 유발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출연진이 밤새 쉴 새 없이 달리며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런닝맨이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다면 정말 흥미진진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이야말로 최적의 문제 해결 장소가 아닌가. 예로부터 도서관은 자신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장소였다. 세종이 학자들과 한글을 창제할 때도 ‘집현전’이라는 곳을, 정조가 시대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할 때에도 ‘규장각’이라는 곳을 찾았다. ?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해리 포터와 그의 친구들이 궁금증을 해결하던 곳도, 영화 <로렌조 오일>에서 부모가 자식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간 곳도 바로 도서관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그림책 속 주인공들은 어떠할까? 그림책 속에서도 어려운 문제 앞에서 도서관을 찾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어처구니 이야기>(비룡소) 속에 등장한다. 어처구니란 생각 밖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물건을 뜻하기도 하지만, 궁궐 추녀마루 끝자락에 있는 흙으로 만든 조각물을 일컫기도 하는데,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이다. 소재부터 참신한 <어처구니 이야기>는 그림이 한 몫을 톡톡히 한다. 사람들이 손을 없애달라고 비는 장면에서는 고구려 벽화가 고스란히 한쪽 지면을 차지하는가 하면, 단청 무늬나 임금님의 옷 문양 등 전통미를 물씬 풍기는 장식들이 많다. 컴퓨터 그래픽과 콜라주 기법을 이용하여 판화로 찍어낸 듯 역동적이기도 하다. 궁궐을 지키는 어처구니들은 하나같이 괴상하게 생겼지만 어딘지 모르게 사랑스럽다. 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쳐 하늘나라 임금님을 노하게 만든다. 이구룡은 거짓말로 하늘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저팔계는 술을 먹고 천도복숭아 나무를 몽땅 뽑아버린다. 손행자는 하늘나라 임금님과 똑같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선녀들을 골탕 먹이고, 사화상은 하늘나라 임금님이 아끼는 연못의 물고기를 다 죽게 한다. 대당사부는 사람들의 죽는 날을 똑같이 만들어 커다란 말썽을 일으킨다. 하늘나라 임금님은 어처구니들을 몽땅 잡아들이고 마침 사람들을 괴롭히던 손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손을 잡는 데 실패하자 좋은 수를 궁리하던 대당사부는 하늘나라 도서관으로 가서 사흘 밤낮을 책과 씨름한다. 화분 돌보기 위해 식물 책 탐독 그런가 하면 <화분을 키워주세요>(웅진주니어)의 주인공 토미는 귀여운 꼬마 탐구자다. <개구쟁이 해리> 시리즈로 유명한 짐 자이언의 작품이다. 대부분의 그림이 초록색과 노랑색으로 그려져 시종일관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그림책이다. 바쁜 아빠 때문에 휴가를 못간 토미는 휴가 간 이웃들의 화분을 돌보아주기로 한다. 하지만 집안에 가득 찬 화초가 너무 크고 튼튼하게 자라자 집이 부서지는 꿈까지 꾼다. 토미는 다음날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화초에 관한 책을 모두 뒤져 식물 다듬는 법을 터득해 온다. 그런가 하면 다른 동물들이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자 도서관으로 달려가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해 똑똑해진 늑대도 있다. 강한 연필선과 투명한 수채물감이 유쾌한 글의 느낌을 한층 살려주는 <난 무서운 늑대라구!>(고슴도치)라는 책 속 주인공이다. 특히 그림 속 늑대는 책을 더 많이 읽을수록 야생적 모습에서 안경을 끼고 조끼를 걸친 지적이고 점잖은 모습으로 탈바꿈된다. 그림이 주는 숨은 묘미다. 그림책 속에서도 여지없이 도서관을 무대로 뛴 우리의 런닝맨들이 있었다. 비록 손을 잡는 데 실패하긴 했지만 계획은 완벽하게 세운 대당사부, 화초를 성공적으로 키워 이웃들의 칭찬을 한껏 받은 토미, 동물들은 물론 아이들의 친구가 된 늑대는 그림책 속 런닝맨들이다. 이런 그림책을 읽고 자란 우리 아이들은 알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호기심 총총한 눈으로 도서관을 찾지 않을까? 어린 시절, 이러한 그림책으로부터의 경험은 어른이 되어서도 어려운 순간을 이겨낼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염광미 <경기 가수초등학교 사서교사> <어처구니 이야기> 작가 박연철씨 “그림책은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책이어야” ‘<어처구니 이야기>는 박연철 작가(40)의 첫 그림책이다. 글만이 아니라 그림도 그가 직접 그린 것이다. 우리 그림책 시장에서 글과 그림을 겸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글과 그림을 겸하는 다른 작가들의 경우처럼 박씨도 그림에서 시작해 이야기 창작으로 발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7년 가까이 학습지 일러스트 작업을 하던 박씨가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3년 무렵이다. “일에 대한 한계를 느끼던 중 그림책의 매혹에 빠져 달려들었다.” 결심은 했지만 그림책의 기본기도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동화작가 정해왕씨가 운영하던 어린이책 작가 그림교실이 그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이곳에서 6개월 동안 공부했다. 우리 민속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는 어처구니들을 소재로 그림책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도 이 시절에 얻었다. 일러스트로 밥벌이를 해왔으니 글쓰는 방법만 훈련하면 되지 않았을까. 박씨는 창작 활동 초기에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했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게다가 학급지 스타일의 그림이라 어린이 그림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했다.” 책을 출판해줄 출판사를 찾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어처구니 이야기>의 글과 그림을 들고 한 출판사의 어린이책 공모전의 문을 두드렸다. <어처구니 이야기>는 2005년 12월, 비룡소 황금도깨비상을 받았다. 상을 통해 책도 얻었지만 자신감도 얻었다. “정형화된 틀에 견주어 이질적이더라도, 자신만의 방법대로 해가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두 번째 책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로 2007년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 상을 받았다. <어처구니 이야기>의 그림에는 목판화의 질감이 살아있다. 대당사부, 이구룡, 저팔계, 사화상, 손행자 등 다섯 어처구니를 묘사하는 데는 우리 전통색인 청, 백, 적, 흑, 황을 기본으로 삼았다. 인물의 사실성보다는 각 어처구니들의 특성에 맞게 손과 발, 눈과 입 등을 강조해 익살스러운 맛을 살렸다. 여기에 고구려 벽화문양이나 단청문양을 컴퓨터 그래픽과 콜라주 기법을 동원해 전통의 느낌이 살아있는 배경으로 집어넣었다. 박씨는 미혼이다. 그러나 결혼 유무가 어린이 그림책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조건은 아니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는 엄마들이 좋아하는 책보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만들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내가 의도를 갖고 다가가는지 아닌지를 직관적으로 안다. 아이들 편에 서기 위해 노력한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이 원칙에 충실했던 까닭에 오해를 사기도 했다. 엄마에게 혼난 아이의 몽상 속에서 망태 할아버지가 엄마를 잡아가버리는 설정을 집어넣은 게 논란이 됐다. “주위 어른들의 반응은 나빴지만 가제본 상태의 책을 본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림책은 오롯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책이어야 한다.” 박씨는 권선징악 구도의 이야기를 경계한다. 아이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다양하게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아이들은 여러 모습을 지니고 있다. 정해진 답보다는 책 읽는 아이들의 개성에 따라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